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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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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록수갤러리
댓글 0건 조회 91회 작성일 24-10-1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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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명 강숙희

작품설명

강숙희(Sookhee Kang)

공주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교육심리상담) 박사과정 수료

개인전: 방금 나를 지나간 바람(애플갤러리: 서울, 2023년)
      봄, 다시 봄(마루아트센터: 서울, 2021년)
해외개인전: Kang Sookhee(굴림 오즈베렌 갤러리, 토로스대학교: 튀르키예, 2024년)   
개인부스전: ‘2022 국제문화아트페어’ 2022 아세아미술상 대상 수상기념 초대작가전
        (갤러리 라메르: 서울, 2022년)
        ‘제44회 한국문화미술대전’ 2021 우수작가초청 개인전(갤러리 라메르: 서울, 2021년) 
단체전: 해외 포함 33회 
아트페어: 해외 포함 10회

* 평론:

마음을 향한 자연의 심상, 강숙희의 흔적들
 
강숙희의 작업은 중첩된 물감들을 파내려가며 시간의 흔적을 캔버스의 공간에 새긴다. 화면 가득히 채워진 색들과 물감을 파낸 흔적들은 자연의 심상(心像)을 닮았다. 자연이라고 항상 평화롭고 항상 편안할까. 인간은 오랜 시간을 자연 안에서 자연의 일부로 살아오며, 자연에 대해 양가적(兩價的)인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자연은 생명의 근원이자 그 삶을 끝내고도 돌아가야 할 안식처인 어머니와 같은 존재(Mother Nature)인 반면, 생존 혹은 편익을 위해서는 정복하거나 개척해야하는 대상이었으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비극적 결과까지 초래하는 자연현상과 재해는 두려움의 존재이기도 했다. 사랑과 평온함, 두려움과 경외가 공존하는 자연에 대한 복잡다단한 여러 입장들 중에서도 강숙희의 자연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편안함의 존재로,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자연의 심상은 지친 삶에 위로가 되고자 한다.

이러한 자연의 심상은 화면 안에 색(色)과 형(形)이 서로 맞물리는 것으로 드러난다.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푸른색,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 등은 은근하게 화면을 채우며 어느 것 하나 두드러지지 않는다. 작가가 가장 편안하게 생각한다는 푸른색은 하늘과 바다로 익숙한,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색이다. 그 푸른색은 자연에서 오는 푸른색이며, 작가의 표현대로 “영적인 침잠(沈潛)”으로 이끄는 색이다. 붉은색은 태양의 색이자 붉은 흙의 색, 그리고 가을의 단풍과 풍요로운 열매의 색이며, 초록색은 보드라운 이끼와 새싹, 푸릇푸릇한 나뭇잎들의 색이고, 노란색은 가득 핀 꽃과 나비, 봄바람의 색이다. 작품 속 형언할 수 없는 수많은 색들은 서로 맞물려가며 저 하나를 내세우지 않고, 우리의 눈을 강렬함으로 잡아채려 너무 애쓰지도 않는다. 그 부드러운 색과 형은 자연을 닮았으나 자연물과 현상을 모방(mimesis) 혹은 재현(再現)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자연의 가장 편안한 색과 형의 요소들을 추출해(abstract) 추상적 표현에 가깝게 자연의 심상을 담아낼 뿐이다.

이렇듯 자연스럽고 은근한 색과 형의 표현은 작가만의 독특한 제작 방식에서 드러난다. 작가는 캔버스에 몇 겹씩 아크릴 물감을 칠하고 말리기를 반복한 후 이를 조각도로 파낸다. 움푹 파인 자국과 함께 켜켜이 바른 물감들이 드러난다. 이 물감들은 동일한 계열의 색이기도, 때로 다른 계통의 색이기도 하며, 여러 겹으로 칠해져 파내진 깊이에 따라 몇 가지 색을 노출한다. 유사색에 가까운 색들이 쌓아졌을 때, 화면은 캔버스 가장 바깥면의 색조로 감싸지며 편안함을 주고, 보색에 가까운 색들의 경우, 대비되는 색의 조화로 생동감이 넘친다. 이 색들은 캔버스에 층층이 칠해지나 층마다 동일한 색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층 안에서도 다른 색이 맞물려 있다. 이는 때때로 형상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산의 능선, 여체의 곡선 등 비교적 구체적 형상의 모습을 띤 것이나, 원형, 삼각형 등 기본 조형의 모습을 띤 것, 그리고 안개나 바람 등을 표현한 좀 더 추상적인 모습에 이르기까지, 색들은 넘실대는 곡선의 형태를 그리며 화면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조각도로 작게 파내려가며 독특한 색의 전경과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색들의 쓰임도 그렇고, 색으로 드러낸 선과 형태들, 조각도로 파낸 곳 모두 직선과 날카로운 부분 없이 곡선과 부드러움이 가득하다. 그 파낸 자국들에는 중첩된 색이 드러나고, 자국들 각각이 모여 전체 캔버스의 색을 이룬다. 둥그스름한 삼각형과 같은 조각도로 파낸 자국들은 꽃잎이나 나뭇잎, 씨앗이나 작은 돌멩이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면 가득한 색과 모호하지만 부드러운 형태들, 그리고 꽃잎, 나뭇잎과도 같은 파낸 자국들이 자연의 마음을 전달해온다. 푸른색은 하나의 푸름이 아니며, 초록색, 갈색, 붉은 색, 노란색과도 넘나든다. 질 들뢰즈(Gill Deleuze)를 빌려 설명하자면, 이는 하나의 색이라는 사물을 ‘~임’(명사, 형용사)가 아니라 ‘~됨’(동사)의 차원으로, 즉 사물의 생성과 운동을 변화의 측면에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들뢰즈는  ‘green’을 예로 들며, ‘푸른(green)’이 사물의 성질을 지시하는 것이라면, ‘푸르러지다(to green)’는 하나의 고정적 성질이 아닌 변화의 측면에서의 사유이며, 이를 “순간의 사건을 의미와 함께 사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강숙희의 색은 조각도로 파낸 순간의 사건들을 풍부한 색의 변화로 표현한다. 파낸 순간과 그 자국의 색, 그리고 화면을 채우는 색은 단순히 고정되어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시간 동안 매 순간 변화하며 우리에게 인상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상은 자연의 심상을 사람의 마음에 와 닿게 하는 것이리라. 

심리상담을 공부한 작가는 심리치료를 위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때로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으며, 때로는 글을 읽거나 쓰게 하고, 때로는 그림을 그리도록 했을 것이다. 주로 말과 글로 이루어진 그 과정에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미술치료를 통해 작가는 마음의 문을 여는 예술의 힘을 체험한다. <봄>, <바람>, <misty>와 같은 제목이 붙은 연작들의 제목은 자연 현상을 그대로 제시하는 듯하나, <봄>은 봄(spring)이자 봄(seeing)이며, <바람>은 바람(wind)이자 바람(wish)이라는 중의적인 표현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에서 작가가 표현하는 자연의 심상은 사람의 마음을 보고, 이해하고, 소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강숙희라는 작가로서의 삶과 자신의 작품이 자연의 심상을 표현하는 자신의 이야기로 환원(還元)되는데 그치지 않고, 점차 타인에게로 확산(擴散)하고자하기 때문이다. 즉, 작가로서의 자아(自我)는 피상적인(<shallow>) 것에서 침잠(沈潛)의 깊이로 작품에 몰입해 창작의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자기만족에 안주해 멈추어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작품을 통해서 소통하고자 하는 타자(他者)의 마음에 가 닿도록 공감(<empathy>)의 지평을 확장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사건과도 같이 다가왔을 것이다. 코카허-린드그렌(Gray Kochhar-Lindgren)은 예술에서의 사건을 “스크래치(scratch)”로 설명한다. 이 사건은 형태를 결정가능하게 하고 기대하지 않은 것을 도래하게 하는 열림이다. 여기에서의 사건은 표면 위에 항상 스크래치가 있는 것처럼 시공간이라는 토대 위에 이를 특정화하는 긁힌 상처나 흔적, 표식 같은 것이다. “스크래치”로서의 예술적 사건은 비유적 표현이나, 강숙희가 조각도로 파낸 스크래치는 작가가 그림을 그리게 된 여러 사건들의 순간들, 그리고 자연을 마주하는 그 순간들, 물감을 칠하고 말리고 파내는 순간들이 모두 사건처럼 흔적으로 쌓여 직접적인 스크래치로 형상화되어 드러난다. 그리고 물감 층에 조각도로 흔적을 내는 그 순간들이 반복되고 이어져, 화면의 공간성을 채우고, 색은 다층적으로 표현된다. 흥미롭게도 조각도로 파낸 흔적의 파편들은 다시금 작가의 손으로 조심스럽게 붙여져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된다. 음각(陰刻)으로 파낸 그 순간의 흔적과 표식은 순간이라는 사건의 시간으로 캔버스 속 공간을 점유하게 되고, 이러한 작가의 행위는, 다시 파낸 파편들을 양각(陽刻)으로 붙여, 떨어져나간 순간, 즉 버려진 시간에 다시금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건과 감정들이 켜켜이 쌓이고 또 깎여가는 삶의 과정은 나의 작업 과정과 닮았다. 물감을 켜켜이 쌓는 것과 그 물감층을 다시 깎아내는 것 또한 우리네 삶의 과정을 닮았기 때문이다.……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하루’는 작업의 과정이기도 하고 삶의 과정이기도 하다.”(<하루> 작가노트 중에서) 일출과 일몰, 낮과 밤, 탄생과 죽음이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맞물려 있듯, 물감을 쌓고, 깎고, 다시 붙이는 지난한 반복적 수행 속에서, 강숙희의 작업은 매일이 되풀이되나 단 하루도 동일하지 않은 것처럼 자연의 심상을 반복하고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쌓아가며 자연의 마음과 자신의 몰입의 순간을 마음으로 함께 나누려 한다. 예술 그 자체를 행하는 몰입의 순간에 대한 희열과 작가가 표현하는 자연의 평안함이 삶에 대한 감사함, 자아와 타자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가득 찰 수 있도록 강숙희의 작업은 이어진다.

- 전혜정(Chun, Hye-Jung / 미술비평, 예술학 박사)